RIDING LOG · MOTO

철원 DMZ 평화·생태길 & 한탄강 라이딩 (1부)

ROUTE
바잘트 38.1 카페 → 유곡리 마을 캠핑장
DISTANCE
84 km
LEVEL
초급
RIDERS
그룹

프롤로그 — 바잘트38.1 라이딩 라운지에서

9월 중순치고는 유난히 맑았던 아침 9시, 라이더들의 아지트 '바잘트38.1 라이딩 라운지'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붉은 벽돌 외벽에 하얀 조화 장식이 걸린 이곳이 이번 1박 2일 투어의 집결지였다. 데님 재킷 위로 사이드 백 스트랩을 대충 걸치고 찍은 인증샷 한 장으로 여정의 막이 올랐다. 목적지는 강원도 철원 — 분단의 상흔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땅이면서, 동시에 가을이면 온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곳이다.

이번 라이딩은 GS 어드벤처 계열 바이크를 탄 라이더들이 함께한 그룹 투어였다. 톱케이스에 붙은 "Let's go, GS-ADV" 스티커처럼, 다들 오랜만의 장거리 라이딩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백마고지 기념관 관망대에서 만난 황금 들녘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편도 2차선 도로 양옆으로 벼가 고개를 숙인 논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달려 첫 목적지인 백마고지 기념관에 닿았다. 관망대에 올라 백마고지 쪽으로 시선을 두니, 드넓은 평야 저 멀리 지평선 위로 삼각형 모양의 하얀 기념 조형물이 아득하게 솟아 있었다. 십수 대의 바이크가 관망대 아래 한 줄로 늘어서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세워둔 바이크들 뒤로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철원 특유의 탁 트인 평야 지형 덕분에 대열 전체와 저 멀리 백마고지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이 투어에서 가장 "라이딩답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백마고지, 흙 대신 남은 이름

다시 바이크에 올라, 아까 관망대에서 아득하게만 보이던 그 하얀 조형물 앞으로 향했다. 백마고지 전적비. 철원 북방에 위치한 이곳은 1952년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맞붙어 10일간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는,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약 30만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동안 고지의 원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고, 서로의 포격으로 뒤덮인 산등성이가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처럼 보였다 하여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안내판은 전한다. 이 전투의 승리로 9사단은 '백마부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숫자로 남은 희생의 기록을 안내판으로 마주하고 나니, 오늘 아침 지나온 황금빛 논밭이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노동당사, 멈춰버린 시간

백마고지에서 멀지 않은 곳, 철원읍 관전리에는 붉은 화강암 골조만 남은 3층 건물이 서 있다. 1946년, 38선 이북에 속했던 철원에 진주한 소련군의 지원 아래 세워진 옛 조선노동당 철원군당 청사다.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정면 포치의 러시아풍 장식만이 한때의 위용을 짐작하게 할 뿐, 골조 곳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포탄과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헬멧을 쓴 채 표지석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기념촬영을 남겼다.

같은 땅 위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간격으로 소이산의 평화로운 산책로와 백마고지의 격전지, 그리고 멈춰버린 노동당사를 차례로 마주하다 보니, 철원이라는 지역이 가진 이름 그대로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샘통고추냉이 농장, 무지개가 걸린 송어 연못

무거운 역사 탐방 뒤, 노동당사 앞 민통선 초소를 지나 찾아간 곳은 샘통고추냉이 농장이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추냉이를 대규모 상업 재배하기 시작한 곳으로, 사계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샘통의 맑은 용천수 덕분에 이 까다로운 작물이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보랏빛 생장광 아래 초록빛 고추냉이 잎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서늘하고 그늘진 환경을 좋아하는 예민한 작물답게, 낯선 보랏빛 조명 아래 빼곡히 늘어선 모습 자체가 볼거리였다.

바로 옆 쉼터에는 송어가 헤엄치는 연못과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분수가 있었고, 한낮의 햇빛을 받아 물줄기 사이로 작은 무지개가 걸렸다. 노란 지붕의 건물과 어우러진 이 풍경 앞에서 다들 잠시 헬멧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소이산, 민간인의 발길이 끊겼던 산에 오르다

철원역사문화공원에 도착해 바이크를 세우고 향한 곳은 소이산(所伊山) 모노레일이었다. 해발 362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던 탓에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8인승 모노레일이 5~7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편도 약 10여 분 만에 정상 부근까지 데려다준다. 잠시 헬멧을 벗고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며...., 좁은 모노레일 안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오히려 이날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모노레일이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서는 한때 실제 경계 근무가 이뤄지던 양지초소를 스쳐 지났다. 초소를 통과해 도착한 정상에는 평화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포장된 산책로 끝에 서 있는 이 전망대 일대는 과거 지뢰가 묻혀 있던 흔적이 남아 '지뢰꽃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데, 지금은 그런 사연을 잊게 할 만큼 평화로운 풍경이다. 난간 너머로는 민간인통제선 안쪽의 드넓은 철원평야와 비닐하우스, 그 뒤로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발아래 펼쳐진 땅이 지도 앱에서도 온전히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이 풍경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철원 DMZ 평화·생태길 & 한탄강 라이딩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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